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베 신조 피살 사건 (문단 편집) === 사망 === 20명의 의료진이 400mL짜리 B형 혈액팩 100개, 즉 10명 분[* 총 약 40L다.]에 가까운 피를 수혈하고 응급수술을 시행했지만, 결국 17시 03분에 심장 손상 및 과다출혈로 인한 공식 '''사망 판정'''을 내렸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03/0011294471?sid=104|#1]], [[https://www.yna.co.kr/view/AKR20220708078055073|#2]], [[https://www.news1.kr/articles/?4736800|#3]], [[https://newsis.com/view/?id=NISX20220708_0001936913|#4]] 아베 아키에 여사가 도착하고 나서 거의 직후에 나온 발표인데, 정황상 아베는 이미 사망했고 이후 도착한 보호자인 아키에 여사의 입회 하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추측된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 -6px" [[파일:아베 사망 보도 신문 배포 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fff ▲ ''''요미우리 신문'의 아베 사망 [[호외|{{{#fff 호외}}}]] 배포'''}}} || [[자민당(일본)|자민당]]은 [[엠바고|43분 뒤인]] 17시 46분경, 아베 신조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음을 공식 발표했다. [[https://www3.nhk.or.jp/news/html/20220708/k10013707681000.html|#]] 수술을 담당한 [[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]]의 의료진은 아베 신조가 병원에 후송되었을 당시 이미 심폐정지 상태였으며, "목에 약 5cm 떨어져 2곳의 총상이 있었고 상흔은 심장에까지 이르렀다"고 밝혔다.[* 아베 신조가 쓰러진 직후 현장에서 심폐소생술 및 [[자동심장충격기]](AED)가 사용되었는데, 대량 출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심장을 쥐어짜는 이러한 응급 조치는 환자의 상태를 도리어 악화시킬 수 있다. 의료진은 "이것이 옳은 판단이었느냐"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"당시 현장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"며 언급을 피했다.] 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16/0002013457?sid=104|#]] 이에 따라 지혈 조치 및 무려 20,000 단위의 대량 수혈을 통해 응급 수술을 진행했으나 어떠한 차도도 없었으며, 부인 [[아베 아키에]] 여사가 16시 57분 병원에 도착한 직후 사망선고를 받았다. 보호자인 부인 입회 하에 법적 사망 선고를 내렸을 뿐, 의학적으론 그 전에 이미 사망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. 아베의 시신은 [[부검]] 후 병원 내에 임시 안치되었다가 다음날인 7월 9일 6시경에 [[영구차]]에 실려 도쿄 시부야 자택으로 운구되었다. 공식 장례식은 사흘 뒤인 7월 12일 [[도쿄도]] [[미나토구(도쿄)|미나토구]] 시바코엔 조죠지(增上寺)[* 1590년부터 [[도쿠가와]] 가문의 보리사(菩提寺)로 지정된 사찰이며 [[도쿠가와 이에야스]]의 장례가 이곳에서 치러졌다. [[에도 막부]]의 15명의 쇼군 중 6명이 이곳에 묻혀있다.]에서 거행되었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 -6px" [[파일:아베 자택 운구차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fff ▲ '''아베 신조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. [[링컨 MKT|{{{#FFFFFF 링컨 MKT}}}]]와 [[메르세데스-벤츠 E클래스|{{{#FFFFFF 벤츠 E클래스}}}]]가 사용되었다.'''[* 자료 화면을 찾아보면 나라현립병원에서 자택으로의 운구는 링컨 MKT와 E클래스 차량으로 진행했고, 자택에서 장례식장이나 생전에 활동했던 곳과 화장장에 갈 때는 [[토요타 센추리]] 차량으로 시신을 운구했다.]}}} || 장례 방식은 가족장으로 진행하며, 구체적인 장례 논의는 7월 10일 참의원 선거 개표 이후에 이뤄졌다. [[http://www.munhwa.com/news/view.html?no=2022070901039910019001|#]] 본래는 [[국장]]으로 진행한다는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경우 선거 일정을 연기해야 하는 탓에 무산되었고, 먼저 지인과 가족만 참석하는 가족장으로 진행한 후 추후 국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.[* 일본에서 전직 수상의 장례를 국장으로 거행한 것은 1967년 사망한 [[요시다 시게루]]가 첫 사례다.] [[https://m.yna.co.kr/view/AKR20220715053600073?section=international/all|#]] 일본에서는 비용과 국장 관련 법이 없다 보니 신중론도 있었으나 기시다 수상의 강한 뜻으로 성사되었다. 나라현의 사건 장소와 더불어 생전 자신의 지역구였던 [[야마구치 4구]]에 있는 사무소에 지지자들과 추모객들이 몰렸다. [[https://www3.nhk.or.jp/news/html/20220709/k10013709271000.html|#]] 장례는 일본에서 흔하게 이루어지는 [[화장(장례)|화장]]으로 치러졌다.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5U37c2SvHIw|#]] 장지는 [[후지산]] 인근에 위치한 '후지 레이엔'(冨士霊園) 공동묘지로, 외조부 [[기시 노부스케]] 전 총리와 선친 [[아베 신타로]] 전 외무대신의 묘지도 이곳에 있다. 8월 5일에 중, 참의원 본회의에서 조사가 낭독되었다. [[https://www3.nhk.or.jp/news/html/20220805/k10013755251000.html|#]] [[아시아]] 순방 중이었던 [[낸시 펠로시]]도 참석했다. 국장은 9월 27일에 [[일본 무도관|도쿄 무도관]]에서 가진다. [[https://www3.nhk.or.jp/news/html/20220720/k10013727231000.html|#]] 비용은 2억 5,000만엔으로 결정되었다. [[https://www3.nhk.or.jp/news/html/20220826/k10013788381000.html|#]] 여기에 경비비에 8억엔과 외국 인사 접대비에 6억엔이 추가되었다. [[https://m.yna.co.kr/view/AKR20220906080600073?section=international/all|#]] 그러나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, 관청에 조기 게양과 묵념을 요구할지에 관한 결정을 보류했다. 국장 연출은 [[2019년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|벚꽃을 보는 모임]]을 연출했던 회사가 맡는다는 것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. [[https://www3.nhk.or.jp/news/html/20220905/k10013803621000.html|#]] 최종적으로는 경비로 12억 4천만엔(약 120억원)이 투입됐다. [[https://m.yna.co.kr/view/AKR20221014067000073?section=international/all|#]] 1주기 추도 행사가 도쿄 조죠지에서 열렸다. 이런 와중에도 수상한 물건으로 인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. [[https://www3.nhk.or.jp/news/html/20230708/k10014122721000.html|#]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his=문단, title=아베 신조 피살 사건/사건 전개, version=2)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